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 구도가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가 자체 AI 칩 개발 성공을 발표하며 미국 증시를 뒤흔든 가운데, 중국 정부는 2027년까지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공개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미국 의존도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화웨이의 '어센드' 시리즈와 캠브리콘 등이 엔비디아 H20 칩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편 엔비디아와 직접 협력하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는 새로운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그동안 HBM3E를 독점 공급해온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매출의 27.3%를 차지하며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지만, 차세대 HBM4 시장에서는 경쟁 구도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HBM4 샘플을 엔비디아에 공급하며 격차 줄이기에 나선 가운데, 엔비디아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양사 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미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와 AI 투자 붐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지정학적 리스크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AI 칩 시장 점유율 80%를 유지하며 2분기 매출 467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중국의 자립화 움직임과 공급망 재편 압박 속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HBM을 넘어 소캠(SOCAMM), GDDR7 등 차세대 메모리 협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경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칩 '블랙웰' 시리즈에 5세대 HBM3E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며 올해 상반기 단일 고객 매출 10조890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매출의 27.3%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6세대 HBM4 시장에서는 판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가 3월 가장 먼저 HBM4 12단 샘플을 엔비디아에 전달했지만, 삼성전자도 지난달 샘플 공급을 완료하며 본격 경쟁에 나섰다. HBM4는 고객 맞춤형 제작으로 기존과 다른 설계·제조 공정이 적용되는 만큼,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능력을 갖춘 삼성전자가 더 유리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는 엔비디아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으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크게 줄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2분기 매출 467억4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56% 성장하며 시장 기대치를 상회하는 실적을 발표했다. 순이익은 59% 증가한 257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데이터센터 사업부 매출은 411억 달러로 전체 매출의 88%를 차지했다. 하지만 대중국 수출 규제로 H20 칩 판매 중단이 45억 달러 손실을 초래했고, 만약 판매가 가능했다면 80억 달러를 더 올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증권가는 여전히 낙관적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2030년까지 AI 인프라 투자 규모가 3~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엔비디아의 높은 호환성과 범용 컴퓨팅 강점이 ASIC 대비 시장 침투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젠슨 황 CEO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중국 수출 논의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밝히며, 블랙웰 칩의 저사양 버전을 통한 중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 알리바바가 차세대 AI 칩을 자체 제작해 시험 중이라는 소식에 미국 증시가 크게 동요했다. 29일 나스닥은 1.15% 급락했고,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주가는 3% 넘게 떨어졌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3% 이상 하락하며 30개 구성 종목 중 1개를 제외한 모든 종목이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알리바바 ADR은 13% 급등했다.
중국의 '탈 엔비디아'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AI 칩 수요 감소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알리바바는 기존 TSMC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 칩 생산 단계까지 발전했고, 다른 중국 기술기업들도 엔비디아 H20 칩 대체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공공 데이터센터 칩의 절반 이상을 자국산으로 공급하도록 요구하면서, 화웨이와 캠브리콘 등을 중심으로 한 중국 반도체 생태계가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 2분기 GDP가 예상치 3.1%를 웃도는 3.3%로 상향 조정되며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기업투자가 당초 추정치 1.9%를 크게 웃도는 5.7% 급증하면서 성장을 견인했고, 소프트웨어 투자와 운송장비 투자가 상향 조정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관세 인상을 앞둔 기업들의 선제적 투자와 AI 관련 인프라 확충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AI 인프라 투자 붐도 본격화되고 있다. SK그룹은 울산에 7조원을 투입해 6만 장 GPU 규모의 대형 AI 데이터센터 착공에 나섰고, TSMC는 2나노 공정에서 60% 수율을 달성하며 올해 4분기 본격 양산을 앞두고 있다. 초기 생산량의 절반이 애플 물량으로 배정되는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의 차세대 반도체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