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엔비디아가 2분기 467억 달러의 매출로 전년 대비 56% 성장을 기록하며 AI 붐을 주도하는 가운데, 중국이 알리바바의 자체 AI 칩 개발 성공을 통해 '탈 엔비디아'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알리바바가 공개한 신형 AI 추론 칩은 기존보다 범용성이 높고 엔비디아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호환되는 특징을 보여, 단순한 대체재를 넘어선 실질적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러한 중국의 반격은 미국의 강력한 맞불로 이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부여했던 '검증된 최종 사용자' 지위를 박탈하고, 내년 1월부터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 시 매 건마다 개별 허가를 받도록 하는 강화된 규제를 발표했다. 이는 한국 기업을 통한 미국 기술의 중국 유출 차단과 함께 '안미경중' 기조에 대한 견제 의도로 해석된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제 본격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이재용 삼성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의 만남을 통해 AI 협력 확대를 논의한 것은 한미 반도체 동맹 강화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특히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독주 체제에 삼성이 HBM4부터 엔비디아와 공동 설계에 나서면서 경쟁 구도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 내 생산기지 운영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우위 확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엔비디아는 2분기 467억 달러 매출로 전년 대비 56% 성장하며 AI 시장 주도권을 재확인했다. 데이터센터 사업부 매출은 411억 달러로 56% 증가했으나, 중국 H20 칩 수출 중단으로 45억 달러 손실이 발생해 시장 전망치를 소폭 하회했다. 젠슨 황 CEO는 트럼프 행정부와 블랙웰 칩의 중국 수출 허용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성능을 30~50% 제한하는 조건부 승인 가능성만 제기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 규제에 맞서 AI 반도체 자급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개발한 신형 AI 추론 칩은 범용성이 높고 엔비디아 소프트웨어와 호환되는 특징을 보여 실질적 대체 가능성을 입증했다. 메타엑스는 H20보다 메모리 용량이 큰 칩을, 캠브리콘은 'Siyuan 590'으로 2분기 2억4700만 달러 매출을 기록하며 시가총액 870억 달러를 돌파했다. 중국 정부는 84억 달러 규모의 AI 펀드 조성과 함께 공공 데이터센터 컴퓨팅 칩의 절반 이상을 중국 업체에서 공급받도록 요구하는 등 제도적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자체 AI 칩 개발 소식은 글로벌 증시에 즉각적인 충격을 안겼다. 29일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은 1.15% 하락했고, 알리바바 ADR은 13% 급등한 반면 엔비디아는 3.32% 하락하며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3.15% 폭락했으며, 브로드컴(-3.65%), AMD(-3.53%), 마이크론(-2.45%) 등 주요 반도체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이는 AI 칩 산업의 공급망 재편 가능성을 시장이 현실적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H20 칩을 대체할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서, 미국 기술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7월 미국 PCE 지수가 예상치에 부합하며 9월 금리 인하 기대감(87.2%)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주 약세가 전체 증시를 압박한 것은 반도체 패권 경쟁의 파급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한미 기업 간 전략적 파트너십이 대폭 확대됐다.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한국 기업들은 1500억 달러(20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발표했으며, 특히 AI 반도체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간 협력 확대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엔비디아 슈퍼컴퓨터에 최적화된 반도체 칩을 한국 기업이 공급하는 방안'이 검토됐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이재용 삼성 회장과 젠슨 황 CEO의 '뜨거운 포옹', 최태원 SK 회장이 황 CEO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소개하는 장면 등이 포착된 것이다. 이는 HBM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두 기업이 엔비디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글로벌 AI 공급망에서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반도체 외교전'으로 해석된다. 특히 10월 경주 APEC에서 세 인물의 재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한미 AI 반도체 동맹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나흘 만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강력한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상무부는 두 기업의 중국 공장에 부여했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박탈하고, 내년 1월부터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 시 매 건마다 개별 허가를 받도록 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이는 연간 1000건의 추가 허가 신청을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장비 수급에 최장 9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삼성 시안 낸드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 D램 공장은 각각 전체 생산량의 35%, 40%를 담당하는 핵심 거점이다. 미국은 '현상 유지는 허용하되 생산 확장과 기술 업그레이드는 불허'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정기적인 장비 교체와 유지보수가 필수인 반도체 산업 특성상 중장기적으로는 상당한 제약이 될 전망이다. 다만 두 기업이 중국에서는 구세대 범용 제품 위주로 생산하고, HBM 등 전략 품목은 국내·미국에 집중하고 있어 단기적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한국의 '안미경중' 기조에 대한 미국의 명확한 견제 신호로, 향후 120일간 한미 협상을 통한 완화 방안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