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포트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상황, 그리고 이들 국가와 러시아 간의 긴장 관계를 분석한 것입니다. 발트 3국의 소련 통치 시기부터 독립과정을 다루며, 노래 혁명 등 중요한 사건을 통해 독립 운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발트해 영해 경계 변경, 군사적 긴장, 러시아와의 전기 송전 차단 등 현재의 국제적 갈등을 상세히 분석하였습니다. 발트 3국의 군사적 준비와 NATO와의 협력 상황, 그리고 문화적 유산과 관광지에 대해서도 다루어 발트 3국의 현재 상황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39년 소련은 나치 독일과 비밀리에 불가침 협약을 맺고, 발트해 연안의 독립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진입하여 1940년에 이들 국가를 연방 산하의 새로운 공화국들로 흡수했습니다. 이후 독일과 폴란드를 분할하여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독소불가침조약을 깨고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면서 발트 3국은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수많은 유태인을 포함한 발트 3국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1944년 소련이 다시 발트 지역을 지배하게 되자 대규모 강제이주 정책을 통해 많은 발트 해 연안 주민들이 강제수용소나 시베리아의 집단 농장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그 후 44년 동안 발트 3국은 소련의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으로서 소비에트 최고 회의를 중심으로 통제 받았습니다.
발트 3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습니다. 1988년 11월, 에스토니아는 주권 선언을 발표하며 소련에서의 독립을 점차 이루어 나가려고 했고,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역시 같은 절차를 밟아갔습니다. 1990년 3월 11일 리투아니아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했고, 같은 해 에스토니아는 5월 8일, 라트비아는 5월 4일에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기 전부터 발트 3국은 독립 열기가 매우 강했으며, 많은 독립 요구 시위와 정치적 운동이 이루어졌습니다.
노래 혁명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1986년부터 1991년에 걸쳐 소련 치하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서 자리잡기 위한 일련의 정치사회적 사건들을 의미합니다. 1988년 5월 14일 에스토니아 타르투 대학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서 에스토니아 애국심을 표현하는 노래들이 연주되었고, 이는 노래 혁명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991년 8월 20일 탈린에서는 30만명에 달하는 에스토니아인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발트 3국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으며, 노래 혁명이라는 명칭도 에스토니아의 노래 축제에서 차용된 것입니다. 리투아니아의 사유디스(Sąjūdis)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단체들은 1988년 11월 리투아니아 국기와 국가를 합법화하고, 리투아니아어를 유일한 국어로 선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독립을 이루어냈습니다.
2024년 7월 17일 러시아가 발트해 영해 경계를 변경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법안은 1985년 소련이 설정한 경계가 현재의 지리적 상황과 맞지 않다는 이유를 들며, 핀란드만 동쪽 지역과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근해의 국경을 조정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핀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유엔 해양법 협약 준수를 요구하며 즉각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냈으며, NATO 회원국들과 협력하여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였습니다.
러시아는 발트해 인근 지역에서 핵무기 훈련을 진행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여 러시아를 공격하게 하려는 시도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하였으며, 우크라이나에서 승리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발트 3국과 러시아 간의 군사적 긴장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2024년 2월 16일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브렐(BRELL) 협약에서 공식 탈퇴를 통보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발트 3국의 전력망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송전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예정입니다. 발트 3국은 이미 러시아산 전기 구매를 중단하였으나, 이번 탈퇴 통보는 전기 주파수가 모스크바에 의해 제어되는 그리드에서 완전 분리되는 상징적 조치로 평가됩니다. 내년 2월 9일 발틱 시스템은 유럽 에너지 네트워크와 연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의 공세에 대비하여 군대를 현대화하고 준비하는 데 2~3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마틴 헤렘 장군은 에스토니아가 러시아의 공격에 대응할 준비가 되기 위해 2~3년이 필요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는 GDP의 3.2%를 국방에 투자하는 에스토니아의 높은 방위 노력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러한 군사 준비는 NATO 내부의 인식 차이 속에서도 에스토니아가 독자적으로 방어 능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NATO는 발트 3국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어 전략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경각심이 덜한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독일 정보부와 핀란드 군대는 러시아의 작전 준비가 가속화될 수 있는 고위험 시기를 4~5년 내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발트 3국은 NATO와 협력하여 군사적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구시가지는 유럽 전역에서 14세기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비루 게이트부터 시작해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구시가지는 상인과 일반인이 거주하는 저지대와 영주 및 귀족들이 머물던 고지대로 나뉘어 있습니다. 주요 랜드마크로는 러시아 정교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성당, 석회암 절벽 위에 세워진 둠페아 성과 성벽, 카타리나 수도원, 고딕 양식의 올레비스테 교회 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붉은 고깔 모양 지붕을 얹은 쌍둥이 탑과 같은 중세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중세 시대 여행을 시작하는 비밀의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구시가지 전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리가는 13세기 이후 한자동맹의 주요 맹주로, 중세 건축물들이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자유의 여신상, 화약탑, 삼형제 건물, 검은 머리 전당 등의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한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도 중세 유산으로 빛납니다.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얹어 파리로 가지고 가고 싶다'고 했던 성 안나 성당이 유명하며, 구시가지 입구에 있는 새벽의 문과 '블랙 마돈나' 성모마리아상도 주요 명소입니다.
트라카이 성은 리투아니아의 갈베 호수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14세기에 건설된 이후 수 세기 동안의 전쟁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55년에 복원되었습니다. 트라카이 성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의 촬영 장소로도 자주 등장하며, 여행자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명소로 꼽힙니다. 호수를 타고 성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카야 칼라스는 에스토니아가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1977년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경험하며 어린 시절부터 자유의 중요성을 직접 느꼈습니다. 2021년부터 총리로 재직하면서 에스토니아의 국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그녀는 에스토니아의 강력한 지지와 국제사회의 러시아 규탄을 이끌었습니다. 에스토니아는 GDP 대비 우크라이나 지원금 비율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작지만 강한 지원을 보였고, 칼라스는 이에 있어 주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북유럽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지명수배 명단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최근, 그녀는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로 내정되었으며, 이는 에스토니아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에스토니아는 EU와 NATO의 일원으로서 서방과의 단단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해 안보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EU 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카야 칼라스 총리는 EU 내에서 대러시아 제재와 관련된 정책에 적극 참여하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는 인구 130만 명의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칼라스 총리의 리더십 덕분입니다. 그녀는 현재 총리직에서 물러나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로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예정입니다.
이 리포트는 발트 3국의 역사적 배경과 현대 정치적 상황을 심도 있게 분석하여,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러시아 간의 긴장 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하였습니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 총리의 정치적 행보와 NATO와의 협력 강화, 그리고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한 발트 3국의 군사 준비 상태가 주요 발견 내용입니다. 발트 3국의 중세 문화유산과 관광지가 국제적 인식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러시아와의 긴장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발트해 영해 경계 변경과 전기 송전 차단 등은 국제적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계점으로는 세부적인 군사 전략이나 국제적 대응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분석의 부족을 지적할 수 있으며, 향후 연구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발트 3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필요합니다. 발트 3국의 사례는 국제 관계와 정치적 안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며, 그들의 군사적 대비와 정치적 행보는 앞으로도 주목할 만한 주제입니다.
발트해 연안의 3개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의미하며, 소련의 지배를 받았고 1991년 독립을 이루었다. 현재는 NATO와 EU의 회원국으로, 주요한 군사적, 정치적 동맹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발트 3국 중 하나로,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했다. 현재는 NATO와 EU의 회원국으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강력한 군사 정책을 펼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총리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강력히 반대하며 에스토니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로 내정되며 유럽 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88년 에스토니아에서 시작된 평화적 저항 운동으로, 대규모 음악 집회를 통해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이 운동은 발트 3국의 독립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가 발트해 영해 경계를 재설정하려고 시도하면서 발생한 국제적 갈등. 핀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유엔 해양법 협약 준수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로, 중세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를 포함한다. 발트 3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이다.